
전역을 앞두고 휴가를 나왔다. 끝이 안 보일 거 같은 군생활이 벌써 20일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입대하기 전엔 끔찍하게 군대에 가기 싫었다.
직장에서 너무나 재미있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대학교 졸업도 하며 온전히 직장과 취미생활에만 집중을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에선 내가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있고 없는 상황도 있다. 병역 문제라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고 언젠가는 꼭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당시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 너무 행복했음에도 마음 한편에 숙제를 남겨놓은 것처럼 항상 신경이 쓰였다.
내가 병역 문제를 더 미뤘을 때,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평생 걸림돌이 될 거 같았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막혀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빠르게 해결하고자 했다.
2024년 4월. 대학교를 졸업하고 2달 뒤 입대를 급하게 결정하게 된다. 입대가 확정된 순간 다니던 HR에 해당 사실을 보고드렸다.
존경하던 실장님이 계셨는데 실장님께서는 전역하고 편하게 연락하라고 하셨다. 당시엔 이 말을 듣고 많이 안심된 거 같다.
정말 아끼고 친했던 팀원분들과 떨어지다니.. 타지에 올라와서 혼자 생활하던 나로서는 굉장히 슬픈 일이었다.
훈련소
2024년 4월 26일 논산 육군훈련소로 훈련소가 배정된다. 처음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는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주는 밥, 피복류, 개인 장구류 및 물자들을 사용하며 사회에 있을 때 나의 존재를 지워가는 듯 했다.
또 매일같이 점호, 체력 단련, 훈련을 받으며 군대의 하루일과나 전체적인 시스템에 대해 깨달아갔다.
외국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지역에서 모여온 사람들, 다양한 나이의 스펙트럼, 다양한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니 빠르게 친해지기는 어렵다고 느꼈다. 하지만 매일같이 힘든 하루를 의지할 수 있는 건 동기들뿐이었고 예상과는 달리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훈련소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체력 단련 시간이었던 거 같다.
사회에서는 가끔 자전거를 타는 것 빼곤 운동과는 멀게 지내던 사람이라 군대식 3대 운동인 팔굽혀펴기 / 뜀검음 / 윗몸일으키기를 수행해 내는 것이 버거웠었다.
하지만 곧 다가올 체력 측정엔 꼭 합격해야만 했었다. 분대원의 90% 이상이 훈련을 낙오하지 않고 체력 측정 조건에 합격하면 최우수분대라는 상훈이 나온다. 상훈 발령권자가 사단장(2스타급)이고 자대 가서 사용할 수 있는 포상휴가도 3일이나 제공해 주기에 나 포함 우리 분대원들은 한동안 체력 증진에 미쳐 살았었다.
전직 보디빌더였던 훈련소 동생의 루틴을 수행하며 하루에 팔굽혀펴기 100개, 윗몸일으키기 100개, 뜀걸음은 장소가 마땅치 않으니 밥 먹는 양을 줄여 체중감량이라도 했었다.
결국 체력 측정 당일 1명을 제외한 모든 분대원이 체력 측정에 합격하여 최우수분대 상훈을 받게된다. 당장 훈련소에서는 사용할 수 없지만 자대 가면 조기진급이나 포상휴가를 사용할 수 있기에 당시엔 너무나도 기뻤다. 우리 분대를 이끌던 조교님도 굉장히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그렇게 모든 훈련을 수료하고 수료식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 자대배치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후방부대 가기를 희망했던 나는 기대를 부푼채 결과를 확인했지만, 파주/고양에 위치한 9사단에 배치되었다. 심지어 보직은 포병..
기술행정병으로 온 친구들이나 후방부대에 배치 받은 동기들이 많이 놀렸었다.
앞으로 가게 될 자대에 대해 또 자대에선 어떻게 하면 에이스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지내다보니 수료식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솔직히 눈물이 날 거 같았는데 참느라 힘들었다. 사회에서 생활할 때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군대에 오니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수료식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훈련소의 분위기가 아주 화목했었다. 평소 자주 화를 내던 조교님들도 웃으면서 궁금한 거 많이 물어보고 가라고 해주셨고, 격려의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전우애로 굳게 다져진 동기들과 마피아게임을 하며 평생 이 순간이 지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잠시 우린 모두 헤어지게 되었고, 각자의 자대로 이동하게 된다.
생활관에서 동기들이 한명씩 자대 가는 버스로 이동할 때마다 마음이 참 씁쓸했다. 자대 가서도 연락하자는 말을 뒤로한 채 나도 훈련소 생활관을 떠나게 된다.
자대
내 자대는 9사단으로 파주/고양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사단에서 인솔해 주는 버스를 타고 6시간 이동하여 육군훈련소에서 9사단까지 이동하였다. 자대로 가는 버스 안에선 걱정을 많이 했다. 군대 관련된 여러가지 사고들이나 선임병들의 부조리를 심심치 않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선임들과 간부님들은 자대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여러방면에서 도와주셨다.
매일매일이 재미있는 하루였다. 처음 보는 동기들 또 선임, 간부님들과 같이 훈련을 받고 일과를 하며 개인정비시간도 함께 보내면서 금방 훈련소 동기들보다 깊은 것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포대장님은 아버지 같았고, 보급관님은 어머니, 선/후임 동기들은 형제 같았다. 한마디로 소속감이 강해졌다.
또 훈련소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직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 한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인데 일본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던 사람, 정육점에서 일했던 사람, 명문대에 재학 중인 사람, 개인 수학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 등등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매우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여러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또 각각의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매우 다양했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도 군대에서의 나는 할 땐 하는 사람이었다. 훈련/주특기/작업과 같이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것엔 매우 진지하게 임하고 단결활동이나 행사와 같이 노는 분위기엔 신나게 놀았었다. 자주포 부수기재 분해 조립하는 방법을 마스터하기 위해 한여름에 포차에 올라와서 교범을 보며 연습했었고, 주특기 관련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선임들이나 간부님들을 따라다니며 자주 물어보고 배우기도 했다.
이게 도움이 많이 되었을까? 선임들에게 모범용사로도 추천을 받고 간부님들도 좋게 봐주셔서 분대장과 또래상담병, 모범용사까지 여러 직책을 맡게 되었다. 입대하기 전 대학교를 졸업했고, 사회생활 경험도 2년가까이 있으니, 용사들의 복무간 고충 해결, 진로 컨설팅도 많이 진행했었다. 특히 전역을 앞둔 선임들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던 게 기억에 난다.
분대장 역할은 순탄치 않았다. 상병으로 진급하자마자 분대장 직책을 받게되어 이제 막 들어온 후임들과 곧 집에 가는 선임들 사이에 끼어 컨트롤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후임들은 자대 생활을 잘 모르니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려했고, 선임들은 "곧 전역하는데 뭐.." 하면서 규정에 어긋난 행동들을 자주 했다. 직책은 있지 실질적인 권한이 있지 않은 나로서는 중간에 끼어 굉장히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분대원을 잘 케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분대장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임들에게는 선임들의 작업을 항상 도와주며 내가 더 고생하려고 했고, 후임들에게는 잘한 일에 대한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어 내가 솔선수범한 모습을 보여 팔로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모습이 도움이 됐을까 2달이 지난 무렵 선임들은 무사히 전역했고 후임들이 분대장을 받는 시기가 오게 됐다. 나 또한 별문제 없이 분대장 직책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에는 훈련의 연속이었다. 우리 여단이 큰 훈련을 앞두고 있어 매일 같이 주특기와 FTX 훈련을 자주 진행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힘들었다. 주특기란 게 실외에서 진행되기도 하고, 포반장으로서 장비 관리나 인원 통제 대한 부담감이 좀 크니 한시도 긴장할 틈이 없었다. 또 3년에 한번 할까말까한 큰 훈련을 앞두고 있었기에 대대장님부터 여단장님 또 사단장님까지 훈련 준비 과정을 열심히 지휘하셨다. 결국 훈련은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되었고 약간 과장해서 우리 여단이 역사에 남을 성과를 달성하긴 했다.
훈련 과정이 너무 길었기도 하고 성과도 너무 좋았다보니 휴가를 많이 받았다. 이등병~상병 때 자주 못 나간 휴가를 병장 되고서야 엄청나게 나오고 있다. 그사이에 나보다 일찍 입대했던 동기들은 이미 전역하기도 했고 벌써 우리 동기 라인이 전역이라는 생각에 좀 신나기도 했다. 1년씩이나 같이 생활한 동기들이 전역한다니까 뭔가 학생 때 친구들 전학 가는 거 보는 느낌이었다. 고생했다고 말 못 해준 게 이제 와서 미안하기는 하다.
앞으로의 계획
막상 전역을 앞두고 휴가를 나와 있는 지금 별 감흥은 없다. 다른 동기들과 달리 대학교를 졸업했기에 전역을 하게 되면 그 시점부터 공백기의 시작이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생활, 군대를 겪으며 인생의 단 한 순간도 집단에 속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전역하는 순간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23살이면 아직 어리네 천천히 해", "전역하고 조금은 놀아도 돼 군대에서 돈도 많이 받았잖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간다. 보통의 4년제 대학생들이 취업 전선으로 진입하는 시기가 26~27세이고 나는 비교적 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기가 가장 나태해지기 쉬운 시기이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기보단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희망하는 개발자라는 직업이 나이에 좌지우지되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메리트를 가져갈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이걸 지금 이용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가진 메리트를 갖다 버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9월 1일에 휴가를 나왔는데 재미있는 공고들을 많이 봤다. 입대하기 전부터 관심 있었던 도메인들이다. 일단 두서없이 서류를 썼다. 입대하기 전에 만든 이력서를 더 다듬고 최신 최용 트렌드에 맞춰 수정했다. 확실히 2년 전과 트렌드는 많이 바뀐 거 같다고 생각한다. 또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이 매우 늘었다. 지원률이 보통 100 : 1, 200 : 1 어쩌면 그 이상에 수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대한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기초에 집중하려고 한다. 전 직장 다닐 때는 아무래도 빅테크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 요즘 기술 트렌드 이런 부분에 정신이 팔려있었던 거 같다. 정작 내가 사용하는 기술들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개발하니 기억에 남는 것도 많이 없다.
전역하는 대로 다시 개인 프로젝트 개발하며 CS 공부를 병행해야겠다. 팀 단위 프로젝트도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커뮤니티나 부트캠프도 알아보고 있다. 아마 부트캠프에 들어간다면 그 기간동안은 취준 활동을 중단하고 부트캠프에 집중해 볼 생각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생각도 많은 지금이다. 이번 연도에 전역한 군대 선임이 쇼핑몰을 하나 운영 중인데 잠깐잠깐 웹서비스 기술 지원을 해주고 있다. 사업 내용도 매우 괜찮고 군대에서부터 느꼈지만, 야망이 큰 사람같다. 나도 누구보다도 더 성공하고 싶지만, 겁이 나는 게 현재 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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